미국 나스닥 상장 반도체 보안기업 실스크(SEALSQ·티커 LAES)가 양자컴퓨터의 해킹 공격에 견디는 맞춤형 반도체를 개발한다. 국방·항공우주, 로봇, 자동차 등 한 번 설치하면 10년 이상 사용하는 장비를 타깃으로 했다.

실스크는 26일 프랑스 자회사 IC’Alps를 통해 ‘QASIC’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QASIC은 양자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PQC)를 고객사의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에 넣는 플랫폼이다. 올해 첫 시제품 제작을 목표로 잡았다.

실스크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미국 나스닥에서 거래되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법인이다. 반도체에 기기 신원과 암호키를 저장하는 보안칩, 공개키기반구조(PKI), 디지털 인증기술을 공급한다. IC’Alps는 디지털·아날로그·혼합신호 회로와 RISC-V 기반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한다.

실스크, 군사장비와 발전소에 ‘양자 방패’ 심는다

인터넷과 금융, 기업 서버, 자동차 통신에는 RSA와 타원곡선암호(ECC)가 널리 사용된다. 충분한 규모의 오류보정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쇼어 알고리즘으로 이들 공개키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현재 양자컴퓨터의 물리 큐비트 수와 오류율은 대규모 암호 해독에 필요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공격자는 암호화된 데이터를 지금 수집해 저장한 뒤 양자컴퓨터가 성장한 시점에 해독할 수 있다. 이를 ‘지금 수집하고 나중에 해독한다(Harvest Now, Decrypt Later)’고 부른다.

자동차와 의료기기, 전력설비, 군사장비에는 장기간 보호해야 할 데이터가 많다. 차량의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자율주행 통신, 심박조율기와 환자 모니터링 장비, 발전소 제어망의 인증키가 대표적이다. 제품 수명이 길고 현장에서 반도체를 교체하기도 어렵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2024년 ML-KEM과 ML-DSA, SLH-DSA 등 양자내성 암호표준을 확정했다. 미국 정부와 금융회사, 통신기업은 기존 암호체계에 어떤 알고리즘과 장비가 사용되는지 조사하고 교체계획을 세우고 있다.

IC’Alps 연구원이 ASIC 시제품 측정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프랑스 IC’Alps 연구개발 현장에서 ASIC 시제품의 전기적 특성을 측정하고 있다. QASIC은 양자내성 암호와 기기 인증 기능을 맞춤형 반도체 설계에 넣는다. PHOTO · IC’Alps

프랑스 IC’Alps 통해 맞춤형 보안칩 Q-ASIC 개발

QASIC은 일반 반도체 공정에서 생산하는 맞춤형 보안칩이다. 양자내성 암호 연산과 키 저장, 기기 인증 기능을 칩 설계 단계부터 넣는다. 자동차회사는 차량통신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맞춰 칩을 설계하고, 의료기기업체는 환자정보와 원격제어 기능에 맞는 보안구조를 선택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로 양자내성 암호를 실행하면 기존 서버와 통신장비를 비교적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 소형 센서와 차량 제어기, 의료기기는 연산능력과 전력, 메모리가 제한된다. 전용 회로를 사용하면 암호 연산속도와 전력효율을 높이고 비밀키가 외부 메모리로 노출되는 위험도 줄일 수 있다.

IC’Alps는 보안구조와 재사용 가능한 반도체 설계자산(IP), 파운드리 생산, 기능안전 인증, 제품 수명주기 관리까지 묶을 계획이다. 고객사가 칩 구조를 소유하고 필요한 기능만 넣는 방식도 유럽이 강조하는 기술주권과 연결된다. 외국산 범용 보안칩에 전체 시스템의 신뢰를 맡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시제품부터 양산까지 넘어야 할 검증

실스크의 발표는 QASIC 개발계획과 첫 시제품 목표를 제시한 단계다. 테이프아웃 여부와 공정, 시제품 성능, 고객사, 수주액, 양산 시기는 미정이다. QASIC이 계획대로 작동하면 양자산업의 매출 발생 시점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칩의 전력소모와 처리속도, 키 관리, 부채널 공격 대응, 기능안전 인증을 함께 통과해야 한다. 암호표준이 바뀔 때 새 알고리즘으로 교체할 수 있는 ‘암호 민첩성’도 필요하다.

실스크는 자사의 ‘퀀텀 코리더(Quantum Corridor)’ 참여국으로 한국도 포함했다. 한국의 반도체 파운드리 인프라를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실스크의 퀀텀 코리더는 양자보안 반도체 엔지니어링 등을 위한 글로벌 생태계로 스위스와 프랑스, 스페인, 미국, 아랍에미리트(UAE)가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