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기업들이 미국 증시로 몰려오고 있다. 올해 들어 호라이즌퀀텀, 재너두, 인플렉션, 퀀티넘, IQM이 잇따라 상장했다. 양자컴퓨팅은 더 이상 대학 연구실과 정부 연구 프로젝트 안에 머무는 기술이 아니다. 이제 월스트리트가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하고 제대로 된 가격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양자컴퓨터 기업 대부분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아니다. 투자자는 현재 이익이 아니라 기술 노선, 큐비트 확장성, 오류율, 정부·기업 계약, 그리고 ‘언젠가 올 양자 우위’에 돈을 건다. 그래서 주가는 기술보다 먼저 달린다.
올해 상장한 5개 기업은 같은 양자컴퓨터 기업으로 묶이지만 기술 노선은 서로 다르다. 퀀티넘을 제외한 4개 기업은 모두 SPAC 합병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호라이즌퀀텀은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다. 주력 제품은 Triple Alpha다. 양자컴퓨터 시대의 개발 도구, 컴파일러, 실행 인프라를 잡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산업으로 치면 직접 칩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칩 생태계를 돌리는 개발 툴을 노리는 쪽이다.
호라이즌퀀텀은 3월 20일 나스닥에서 HQ 티커로 거래를 시작했다. 첫 거래일 종가는 9.85달러였다. 6월 22일 장중 45달러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조정을 받았다.
시장이 호라이즌퀀텀에 프리미엄을 주는 이유는 플랫폼이다. 양자컴퓨터 하드웨어는 아직 승자가 없다. 초전도, 이온트랩, 광자, 중성원자 중 어느 방식이 최종 승자가 될지 모른다. 특정 하드웨어에 덜 묶이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플랫폼 옵션’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약점도 있다. 양자컴퓨터 사용량 자체가 폭발하지 않으면 소프트웨어 인프라의 시장도 커지지 않는다. 삽을 파는 회사는 금광이 열려야 돈을 번다.
재너두는 캐나다의 광자 기반 양자컴퓨터 기업이다. 나스닥과 토론토증권거래소에서 XNDU 티커로 거래된다. 이 회사의 핵심은 빛, 즉 광자를 큐비트로 쓰는 방식이다. 광자 양자컴퓨팅은 상온 또는 비교적 덜 극단적인 환경, 네트워크 연결성, 장기적으로는 오류 정정 구조에서 장점을 내세운다. 재너두는 오픈소스 양자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 PennyLane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재너두는 3월 27일 공개 거래를 시작했다. 7월 17일 종가는 9.99달러다. 첫 거래일 종가 대비 약 13.1% 하락했다.
극단적 변동성을 보인 재너두의 주가 흐름은 올해 양자주 전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상장 직후 ‘광자 양자컴퓨터’라는 차별화된 기술 서사로 급등했지만 급락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PennyLane은 좋은 생태계지만,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곧 하드웨어 매출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기술 서사는 강하지만 상업화 시간표가 긴 기업은 조정에 취약하다.
인플렉션은 중성원자 기반 양자기술 회사다. 티커는 INFQ다. 중성원자 방식은 레이저로 원자를 포획하고 배열해 큐비트로 활용한다. 확장성 측면에서 강점을 주장한다. 인플렉션은 양자컴퓨터뿐 아니라 양자 센서, 원자시계, RF 수신기, 관성항법, 국방기술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넓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인플렉션의 첫 거래일 종가는 15.59달러였다. 7월 17일 종가는 9.09달러다. 상장 이후 약 41.7% 하락했다. 5개 기업 중 낙폭이 가장 크다.
퀀티넘은 이번 양자 상장 러시의 대장주에 가깝다. 허니웰의 양자 부문과 캠브리지 퀀텀이 합쳐져 만들어진 회사다. 기술 노선은 이온트랩이다. 이온트랩 방식은 큐비트 품질과 게이트 정확도에서 강점을 갖는다.
Helios 시스템은 98큐비트 이온트랩 양자컴퓨터로, 회사는 높은 2큐비트 게이트 충실도를 강조한다. 엔비디아, AWS, 롤스로이스 등과의 협력도 있다. 하지만 주가는 역시 널뛰기하고 있다.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았다는 평가도 있다.
IQM은 핀란드 기반의 초전도 양자컴퓨터 회사다. 나스닥에서 IQMX로 거래된다. 초전도 방식은 구글, IBM, 리게티 등이 밀어온 대표적 양자컴퓨터 노선이다.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지만 반도체 공정과의 연결성, 빠른 게이트 속도, 기존 연구 생태계가 강점이다. IQM은 연구기관과 슈퍼컴퓨팅센터가 직접 설치해 운영하는 온프레미스 양자컴퓨터를 강조하고 있다.
월가는 양자컴퓨터를 ‘미래의 엔비디아’로 보고 있는 것일까. 이온트랩의 퀀티넘은 기술 신뢰도가 높지만 밸류에이션 부담이 크다. 광자의 재너두는 서사가 매력적이지만 검증이 필요하다. 중성원자의 인플렉션은 응용 범위가 가장 넓지만 그만큼 정체성이 분산됐다. 호라이즌은 하드웨어 전쟁을 우회하는 옵션으로 부각됐지만 아직은 거기까지다.
한국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양자컴퓨터 상장 러시는 미국 자본시장이 양자 산업의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기업을 상장시키고, 자금을 모으고, 정부 계약과 민간 투자를 연결한다. 유럽 기업 IQM도 결국 미국 나스닥에 왔다. 캐나다의 재너두도 나스닥에 왔다. 싱가포르의 호라이즌퀀텀도 나스닥에 왔다.
한국은 양자기술을 국가전략기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글로벌 투자자에게 한 번이라도 존재감을 보인 한국 양자컴퓨터 상장사는 없다. 연구비는 계속 나오고, 연구성과 발표는 있고, 찬란한 정부 로드맵도 있다. 그런데 기업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한국은 양자컴퓨터 전쟁에서 주변부로 밀릴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기회는 있다. 하지만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은 시간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 증시는 이미 양자컴퓨터 기업들에 가격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가격표가 붙는 순간 산업은 빨라진다. 인재가 이동하고, 자금이 붙고, 정부 계약이 몰린다.
양자컴퓨터 경쟁은 연구 논문 경쟁에서 자본시장 경쟁으로 넘어갔다. 한국이 이 흐름을 놓치면 나중에 할 말은 하나뿐이다.
“또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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