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팅 주식의 옥석이 갈리기 시작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퀀티넘(Quantinuum·QNT)은 12일 28% 오른 71.7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72.40달러까지 올랐다. 전날 발표한 첫 상장 후 실적과 오라클 협업이 동시에 주가를 밀어 올렸다.
같은 날 아이온큐는 4.1%, 리게티컴퓨팅은 1.8%, 디웨이브퀀텀은 2.5% 올랐다. 기간을 넓히면 격차는 더 선명하다. 퀀티넘이 거래를 시작한 6월 4일부터 8월 12일까지 주가는 18.8% 상승한 반면 아이온큐는 31.2%, 리게티는 23.8%, 디웨이브는 25.0% 하락했다.
퀀티넘의 독주는 단순한 테마 순환이 아니다. 월스트리트가 양자컴퓨터 회사에 요구하는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 ‘언젠가 상용화된다’는 약속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매출과 고객, 작동하는 시스템, 클라우드 유통망을 내놓아야 한다.
매출은 800만달러, 손실은 여전히 많다
퀀티넘의 2분기 매출은 800만달러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0만달러보다 279% 증가했다. 회사는 올해 연간 매출 전망도 2800만~3200만달러로 제시했다.
매출 절대액은 아직 작다. 6월 말 기준 현금과 단기투자자산 21억달러에 비하면 상용화 초기 단계라는 사실이 더 또렷하다. 2분기 조정 EBITDA 손실은 6800만달러로 전년 동기 4300만달러보다 커졌다. 미국 회계기준 순손실은 5억9700만달러에 달했다. 상장 관련 거래와 평가손실 등이 포함된 수치지만, 이익을 내는 양자기업으로 변신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가가 오른 이유는 흑자 전환이 아니다. 시장이 퀀티넘의 매출 증가와 첫 공식 가이던스, 21억달러의 현금, 상용화 경로를 한꺼번에 평가했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팅 산업에서는 매출의 크기보다 누가 돈을 내고 어떤 시스템을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 퀀티넘은 연구개발 지원금과 일회성 계약을 넘어 기업 고객이 반복적으로 구매할 제품과 유통망을 구축하는 경계선을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오라클은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다
양사는 다년간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퀀티넘의 최신 양자컴퓨터 ‘헬리오스’를 미국 내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 AI 데이터센터에 설치하기로 했다. OCI 고객은 오라클의 양자 서비스에서 헬리오스에 직접 접근하게 된다.
헬리오스는 98개의 물리 큐비트를 사용하는 이온트랩 방식 양자컴퓨터다. 이온트랩은 전하를 띤 원자를 전자기장으로 붙잡은 뒤 레이저로 제어한다. 초전도 큐비트보다 연산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큐비트 간 연결성과 연산 정확도에서 강점을 보인다.
헬리오스가 오라클 인프라 안으로 들어가면 기존 OCI의 고성능컴퓨팅, GPU, 데이터 저장장치, 네트워크, 접근통제 체계와 같은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다. 현재 양자컴퓨터는 단독으로 기업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 GPU와 CPU가 대부분의 연산을 수행하고 양자컴퓨터가 특정 최적화·시뮬레이션 문제를 맡는 하이브리드 양자-고전 연산이 필요하다.
협력의 진짜 가치는 헬리오스 1대를 판매했다는 데 있지 않다. 퀀티넘이 오라클의 기업 고객과 보안·데이터 관리 체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데 있다. 다만 계약금액과 설치 시점, OCI 고객의 실제 이용량과 매출 전환 여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큐비트 숫자보다 오류를 줄이는 능력
퀀티넘은 실적 발표에서 헬리오스의 논리 연산 정확도가 ‘파이브 나인’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약 99.999% 수준을 뜻한다.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는 외부 잡음에 매우 약하다. 물리 큐비트 여러 개를 묶어 오류를 찾아내고 수정하면서 하나의 더 안정적인 논리 큐비트를 만든다. 물리 큐비트 개수가 많아도 오류가 쌓이면 긴 계산을 끝내지 못한다. 반대로 큐비트 수가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논리 연산의 정확도가 높으면 더 복잡한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퀀티넘은 물리 큐비트 숫자 경쟁보다 오류보정과 논리 큐비트의 신뢰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차세대 시스템 ‘솔’을 2027년, ‘아폴로’를 2029년에 내놓겠다는 계획도 유지했다. 파이브 나인에 근접했다는 성과가 범용 오류보정 양자컴퓨터의 완성을 뜻하지는 않지만, 기술 로드맵에서 작동하는 장비와 클라우드 설치, 고객 접근과 매출로 이어지는 사슬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시장은 반응했다.
SPAC 양자주와 출발 달랐다
퀀티넘은 6월 4일 나스닥에 상장됐다. 기업인수목적회사와 합병하는 우회상장이 아니라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를 내고 신주를 공모하는 전통적 기업공개 방식이었다. 공모가는 60달러였고 클래스A 주식 2800만주를 팔아 16억8000만달러를 조달했다.
반면 아이온큐는 dMY 테크놀로지 그룹 III, 리게티는 슈퍼노바 파트너스 애퀴지션 II, 디웨이브는 DPCM 캐피털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했다. SPAC 합병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먼 미래의 매출 전망과 기술 로드맵이 높은 기업가치를 떠받치기 쉽다. 상용화가 늦어지면 주가는 기술 성과보다 증자와 현금 소진 속도에 더 민감해진다.
퀀티넘은 허니웰의 양자 하드웨어 사업과 케임브리지퀀텀의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사업 기반을 만든 뒤 전략적 자금을 끌어들였다. 상장 경로가 기술력을 자동으로 보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SPAC 양자주가 미래 전망을 먼저 가격에 붙였다면, 퀀티넘은 제품과 매출을 만든 뒤 공개시장에서 가격을 물었다.
주식시장은 이제 ‘양자’라는 이름을 사지 않는다
퀀티넘 상장일인 6월 4일부터 8월 12일까지 퀀티넘은 60.38달러에서 71.74달러로 18.8% 상승했다. 같은 기간 아이온큐는 31.2%, 리게티는 23.8%, 디웨이브는 25.0% 하락했다.
이 비교가 퀀티넘의 영구적 승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기업마다 양자컴퓨터 방식과 매출 구조, 고객, 자본조달 시점이 다르다. 신규 상장 종목의 제한된 유통물량이 12일 하루 28% 급등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시장은 모든 양자주를 하나의 테마로 묶어 사던 단계에서 벗어나 매출과 현금, 오류보정 성과, 장비 납품, 클라우드 유통망을 따져 가격을 달리 매기기 시작했다.
한국은 상장할 기업이 없다
미국 자본시장은 양자기업의 상장 경로까지 다양해졌다. SPAC으로 먼저 들어온 기업들이 있고 대규모 전통적 IPO를 완료한 퀀티넘도 있다. IBM과 구글은 자체 자본으로 장기 연구를 계속하고 정부 조달과 클라우드 기업은 상용화의 다리를 놓는다.
한국은 양자를 국가전략기술이라고 부르지만 독자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오류보정 기술, 기업 고객, 공개시장 자금을 하나의 회사 안에서 연결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2029년 100큐비트급 국산 양자컴퓨터, 2035년 양자칩 제조 세계 1위라는 목표보다 누가 장비를 구매하고 어떤 클라우드에 연결하며 정부 조달이 초기 매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먼저 나와야 한다.
미국은 양자컴퓨터를 오라클 데이터센터에 넣고 매출을 만든다. 한국은 청와대에 모형을 전시하고 2035년 세계 1위를 선언한다. 이런 현실과 간극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번 씨앗(SEED)도 보고서 안에서 썩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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